
- 2012/01/27 12: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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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연휴까지 터질듯한 고민을 마치고,
바로 국문학과 문예창작 전공 대학원 입학에 필요한 절차들을 급하게 진행했다.
모교 대학원 사무실 직원의 말로,
특별전형으로 교수님과의 간단한 테스트를 치룬 뒤 추천서를 받으면, 입학원서를 제출할 수 있다고 했다.
학과장님과 전화통화에 이어, 문예창작 대학원 교수님과의 몇 차례의 메일이 오갔고,
오늘은 내 글을, 작품이라 할 수 없는 그냥 끄적였던 내 이야기를 문서로 정리하고 첨부하여 교수님께 보내 드렸다.
그리고 오늘 드디어 교수님을 만났다.
어제는 밤새 잠을 잘 수 없었다.
잠에서 수십번은 깼다. 잠이 들려고 하면 현실세계로 세게 당겨지는 느낌으로 꿈에서 수십번은 깼다.
그럼에도 이른 아침 일어나 메일을 보내고 준비하고 오랜만에 모교 대학에 왔다.
학교와 거리가 가까워져 갈수록 심장이 빨리 뛰었다.
교수님을 만났다.
내 글을 아직 읽지도 않으셨단다. 내 글을 아직 읽기도 전에, 이미
학부전공이 국문과나 문예창작이 아닌 학생이 대학원을 들어간다는 것이 쉽지 않다고
차라리 학사편입 시험을 치뤄 학부로 들어가서 공부하는 게 낫지 않냐고 물어보셨다.
요새는 학부입학생들도 포트폴리오가 있다며, 아무래도 나에게 대학원 입학이 좋은 방법이 아닌 것 같다고 말씀해주셨다.
고개가 끄덕여졌다.
그러곤 내 앞에서 내 글을 읽어내려가셨다.
그땐 심장이 더 빨리 뛰었다.
문장력도 좋고, 진심이 담겨있는 글이라고 하셨다.
문장력이 좋다는 말씀을 세 번이나 하셨다!!
하지만 수필가지고 대학원입학은 힘들 것 같다고 말씀하셨다.
6개월 동안 습작을 써보라고 권해주셨다.
그리고 그 습작으로 학부편입이든 대학원 정시든 지원하라고 덧붙여주셨다.
나는 그 때부터 그 교수님을 나의 면접관이 아닌 오늘 하루 나의 조언자로 삼고,
그럼 내 수준에서 시, 소설, 극을 배울 수 있는 좋은 방법이 무엇인지 여쭈어보았다.
시, 소설, 극 작품을 읽어보고 마음에 정말 드는 작품은 필사하라고 하셨다.
그리고 짧은 단편소설부터 써보라 하셨다.
그런 최소한의 준비를 마치면 학사든 석사든 글을 배우는 공부를 할 수 있을거라고 하셨다.
그리고 중요한 건.
혼자 6개월동안 글을 갈고 닦든, 학교를 다니든 그것은 기교를 배우는 것이지
정말 중요한 건
나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어야 한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나에게는 하고 싶은 말이 있는 것 같다 보인다고 하셨다.
그 하고 싶은 말을 써보라고 하셨다.
그러면서 대학도 나오지 않고 정식으로 글을 배워본 적이 없지만 소설을 쓴 일본 작가를 소개해주셨다.
그 작가의 글도 읽어보라고 추천해주셨다.
정말 그렇다.
옳은 말씀만 해주셨다.
사실 실망감도 약간 있다.
지난 1년은 7살 이후로 지속되었던 배움을 처음으로 멈추게 되었던 시간이었고,
이제 다시 내가 좋아하는 것을 배울 수 있다는 생각에 가슴이 설렜기 때문이다.
배움에 대해 이토록 기대해본 것은 처음이다.
그러나 내가 너무 성급했나 보다.
교수님은 정말 나를 위해 말씀해주셨다.
그리고 하나님은 정말 나를 위해, 이런 말씀을 들려주셨다.
오늘 아침 묵상을 하면서 메모장에 이렇게 적었다.
"그리 아니하실지라도 나에게 최고 좋은 것을 주시는 선하고 신실하신 아버지를 신뢰하기"
나는 어쩌면 알고 있었다. 나는 너무도 성급했다.
다시 불안한 위치에 놓여져 있다. 학교라는 안정권을 벗어났다.
그러나 상황이 불안하다고 마음까지 불안한 것은 아니다.
이제 정말 일자리를 알아봐야겠다.
한가지 비밀스러운 다짐이 있다.
부모님으로부터 경제적으로 독립해야겠다는 다짐이다.
사실 이 마음속 결심이 밖으로 새어나가면 안될 것 같았다.
아무래도 지키지 못할 것 같은 생각이 강하게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정말 그래야겠다.
무슨 일을 하지?
하나님 무슨 일을 할까요?
하나님 무엇을 적을까요?
- 2012/01/16 03: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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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를 부탁해라는 제목의 소설책이
큰 서점 가판대에 처억처억 수북히 쌓여있는 것을 보았을 때부터
읽어보고자 하였으나 행동으로 옮겨지진 않았다.
최근 나의 친구들이,
그러니까 많은 어머니의 딸들이
이 책을 보면서 지하철이나 카페와 같은 공공장소에서
창피함보다 앞선 감동을 느껴 사람들 앞에서 눈물을 보이며
이 책을 읽었다고들 하여
이 책을 더 미루지 않고 읽어봐야겠다 결심하였다.
이 책은
주인공 시점을 이 책을 지금 읽고 있는 '나'로 지목하였다.
그렇다, 나에게도
이와 똑같지는 않지만 이와 비슷한 엄마가 있다.
나에게도 이와 같지는 않지만
나를 찌르는 엄마에 대한 미안함과 잘해야겠다는 책임감이 있다.
나는 올해 스물 여섯의 성인(?)이지만
여전히 어린 아이처럼 목을 놓아 울 때가 있다.
(오히려 최근에 어른스러워야 한다고 요구받지 않는, 청소년기 때보다 어린 아이처럼 울 일이 많은 것 같다.)
그럴 때면 언제나 내 입에서 울리는 소리는 '엄마'이다.
배게에 얼굴을 파묻고 울리는 소리, 엄마.
나 같은 딸들이 더러 있을 것 같다.
엄마를 부르며 누군가 내 머리를 쓰다듬어주길 바라는 마음을 표현하는 딸들이,
엄마를 부르면서 누가 나의 어리숙하고 부족함을 너그러이 안아주길 바라는 딸들이,
신경숙 작가님도 그런 딸인가.
작가는 자기 이야기를 책으로 쓴다.
작가는 자신을 벗어난 이야기를 쓸래야 쓸 수가 없다.
자신을 벗어나 쓰려고 발버둥 쳐봐도 결국에는 자기자신에게로 이야기가 돌아와 있을 것이다.
이 책을 읽으며,
나는 신경숙 작가의 어린 시절에 함께 가 보았다.
신경숙 작가의 고향집, 평상, 헛간, 그의 어머니, 그리고 그의 어머니의 거칠고 뜨거운 손을 보았다.
또한 나의 어머니와 나의 어머니가 낳은 딸, 곧 나를 보았다.
신경숙 작가가 자라온 세월만큼
내가 자라온 세월은 그리 혹독하지는 않았다.
세월이 변하여
나의 세월에는 몸이 배고프지도 춥지도 않았지만,
우리 엄마는
신경숙 작가의 엄마와 닮은 모습이 더러 있었다.
그녀는 엄마가 우리로 인하여 그 몸이 파먹혔다라고 표현하였다.
그 표현이 내 가슴에 와서 닿았다.
우리 엄마 몸이 나 때문에 파먹혔다.
그 흔적이 여전히 우리 엄마 몸에 분명하다.
엄마에게 내 못난 최선으로
잘하려고 한들,
분명 후회가 남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딸의 사랑이 크다한들
엄마의 사랑과 같아질 수는 없을 것이다.
하지만 엄마의 사랑에 비한다면
작고, 이기적이고, 유치한 나의 사랑을
그래도 엄마에게 표현하는 것이 나의 도리라는 생각이 든다.
신경숙, 이 여자의 글은 정말이지 너무도 따뜻하다.
글을 가슴으로 쓰는 것이 아닌가라는 생각이 들 만큼
따스하다.
씨앗을 애써 뿌리지 않아도
봄이 오면 앞 뜰에는 새싹이 고개를 들고, 이내 자신들의 갖가지 색을 자랑하는 꽃들을 피워 내고
뒷 뜰에는 알뜰살뜰 상추와 깻잎이 쑥쑥 자라나고
평상에는 자식들의 입으로 갈 감자, 고구마, 호박들이 다듬어지는
사계절 내내 따스한 햇볕이 지나가는
그런 집을
그리고
어느 누구도 그것이 당연한 것이 아니다, 특별한 것이다. 말해주지 않는
어머니의 거칠고 뜨거운 손을
작가가 내 마음에 그려주고 간 것 같다.
이어지는 내용
큰 서점 가판대에 처억처억 수북히 쌓여있는 것을 보았을 때부터
읽어보고자 하였으나 행동으로 옮겨지진 않았다.
최근 나의 친구들이,
그러니까 많은 어머니의 딸들이
이 책을 보면서 지하철이나 카페와 같은 공공장소에서
창피함보다 앞선 감동을 느껴 사람들 앞에서 눈물을 보이며
이 책을 읽었다고들 하여
이 책을 더 미루지 않고 읽어봐야겠다 결심하였다.
이 책은
주인공 시점을 이 책을 지금 읽고 있는 '나'로 지목하였다.
그렇다, 나에게도
이와 똑같지는 않지만 이와 비슷한 엄마가 있다.
나에게도 이와 같지는 않지만
나를 찌르는 엄마에 대한 미안함과 잘해야겠다는 책임감이 있다.
나는 올해 스물 여섯의 성인(?)이지만
여전히 어린 아이처럼 목을 놓아 울 때가 있다.
(오히려 최근에 어른스러워야 한다고 요구받지 않는, 청소년기 때보다 어린 아이처럼 울 일이 많은 것 같다.)
그럴 때면 언제나 내 입에서 울리는 소리는 '엄마'이다.
배게에 얼굴을 파묻고 울리는 소리, 엄마.
나 같은 딸들이 더러 있을 것 같다.
엄마를 부르며 누군가 내 머리를 쓰다듬어주길 바라는 마음을 표현하는 딸들이,
엄마를 부르면서 누가 나의 어리숙하고 부족함을 너그러이 안아주길 바라는 딸들이,
신경숙 작가님도 그런 딸인가.
작가는 자기 이야기를 책으로 쓴다.
작가는 자신을 벗어난 이야기를 쓸래야 쓸 수가 없다.
자신을 벗어나 쓰려고 발버둥 쳐봐도 결국에는 자기자신에게로 이야기가 돌아와 있을 것이다.
이 책을 읽으며,
나는 신경숙 작가의 어린 시절에 함께 가 보았다.
신경숙 작가의 고향집, 평상, 헛간, 그의 어머니, 그리고 그의 어머니의 거칠고 뜨거운 손을 보았다.
또한 나의 어머니와 나의 어머니가 낳은 딸, 곧 나를 보았다.
신경숙 작가가 자라온 세월만큼
내가 자라온 세월은 그리 혹독하지는 않았다.
세월이 변하여
나의 세월에는 몸이 배고프지도 춥지도 않았지만,
우리 엄마는
신경숙 작가의 엄마와 닮은 모습이 더러 있었다.
그녀는 엄마가 우리로 인하여 그 몸이 파먹혔다라고 표현하였다.
그 표현이 내 가슴에 와서 닿았다.
우리 엄마 몸이 나 때문에 파먹혔다.
그 흔적이 여전히 우리 엄마 몸에 분명하다.
엄마에게 내 못난 최선으로
잘하려고 한들,
분명 후회가 남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딸의 사랑이 크다한들
엄마의 사랑과 같아질 수는 없을 것이다.
하지만 엄마의 사랑에 비한다면
작고, 이기적이고, 유치한 나의 사랑을
그래도 엄마에게 표현하는 것이 나의 도리라는 생각이 든다.
신경숙, 이 여자의 글은 정말이지 너무도 따뜻하다.
글을 가슴으로 쓰는 것이 아닌가라는 생각이 들 만큼
따스하다.
씨앗을 애써 뿌리지 않아도
봄이 오면 앞 뜰에는 새싹이 고개를 들고, 이내 자신들의 갖가지 색을 자랑하는 꽃들을 피워 내고
뒷 뜰에는 알뜰살뜰 상추와 깻잎이 쑥쑥 자라나고
평상에는 자식들의 입으로 갈 감자, 고구마, 호박들이 다듬어지는
사계절 내내 따스한 햇볕이 지나가는
그런 집을
그리고
어느 누구도 그것이 당연한 것이 아니다, 특별한 것이다. 말해주지 않는
어머니의 거칠고 뜨거운 손을
작가가 내 마음에 그려주고 간 것 같다.
이어지는 내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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