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를 부탁해라는 제목의 소설책이
큰 서점 가판대에 처억처억 수북히 쌓여있는 것을 보았을 때부터
읽어보고자 하였으나 행동으로 옮겨지진 않았다.
최근 나의 친구들이,
그러니까 많은 어머니의 딸들이
이 책을 보면서 지하철이나 카페와 같은 공공장소에서
창피함보다 앞선 감동을 느껴 사람들 앞에서 눈물을 보이며
이 책을 읽었다고들 하여
이 책을 더 미루지 않고 읽어봐야겠다 결심하였다.
이 책은
주인공 시점을 이 책을 지금 읽고 있는 '나'로 지목하였다.
그렇다, 나에게도
이와 똑같지는 않지만 이와 비슷한 엄마가 있다.
나에게도 이와 같지는 않지만
나를 찌르는 엄마에 대한 미안함과 잘해야겠다는 책임감이 있다.
나는 올해 스물 여섯의 성인(?)이지만
여전히 어린 아이처럼 목을 놓아 울 때가 있다.
(오히려 최근에 어른스러워야 한다고 요구받지 않는, 청소년기 때보다 어린 아이처럼 울 일이 많은 것 같다.)
그럴 때면 언제나 내 입에서 울리는 소리는 '엄마'이다.
배게에 얼굴을 파묻고 울리는 소리, 엄마.
나 같은 딸들이 더러 있을 것 같다.
엄마를 부르며 누군가 내 머리를 쓰다듬어주길 바라는 마음을 표현하는 딸들이,
엄마를 부르면서 누가 나의 어리숙하고 부족함을 너그러이 안아주길 바라는 딸들이,
신경숙 작가님도 그런 딸인가.
작가는 자기 이야기를 책으로 쓴다.
작가는 자신을 벗어난 이야기를 쓸래야 쓸 수가 없다.
자신을 벗어나 쓰려고 발버둥 쳐봐도 결국에는 자기자신에게로 이야기가 돌아와 있을 것이다.
이 책을 읽으며,
나는 신경숙 작가의 어린 시절에 함께 가 보았다.
신경숙 작가의 고향집, 평상, 헛간, 그의 어머니, 그리고 그의 어머니의 거칠고 뜨거운 손을 보았다.
또한 나의 어머니와 나의 어머니가 낳은 딸, 곧 나를 보았다.
신경숙 작가가 자라온 세월만큼
내가 자라온 세월은 그리 혹독하지는 않았다.
세월이 변하여
나의 세월에는 몸이 배고프지도 춥지도 않았지만,
우리 엄마는
신경숙 작가의 엄마와 닮은 모습이 더러 있었다.
그녀는 엄마가 우리로 인하여 그 몸이 파먹혔다라고 표현하였다.
그 표현이 내 가슴에 와서 닿았다.
우리 엄마 몸이 나 때문에 파먹혔다.
그 흔적이 여전히 우리 엄마 몸에 분명하다.
엄마에게 내 못난 최선으로
잘하려고 한들,
분명 후회가 남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딸의 사랑이 크다한들
엄마의 사랑과 같아질 수는 없을 것이다.
하지만 엄마의 사랑에 비한다면
작고, 이기적이고, 유치한 나의 사랑을
그래도 엄마에게 표현하는 것이 나의 도리라는 생각이 든다.
신경숙, 이 여자의 글은 정말이지 너무도 따뜻하다.
글을 가슴으로 쓰는 것이 아닌가라는 생각이 들 만큼
따스하다.
씨앗을 애써 뿌리지 않아도
봄이 오면 앞 뜰에는 새싹이 고개를 들고, 이내 자신들의 갖가지 색을 자랑하는 꽃들을 피워 내고
뒷 뜰에는 알뜰살뜰 상추와 깻잎이 쑥쑥 자라나고
평상에는 자식들의 입으로 갈 감자, 고구마, 호박들이 다듬어지는
사계절 내내 따스한 햇볕이 지나가는
그런 집을
그리고
어느 누구도 그것이 당연한 것이 아니다, 특별한 것이다. 말해주지 않는
어머니의 거칠고 뜨거운 손을
작가가 내 마음에 그려주고 간 것 같다.
큰 서점 가판대에 처억처억 수북히 쌓여있는 것을 보았을 때부터
읽어보고자 하였으나 행동으로 옮겨지진 않았다.
최근 나의 친구들이,
그러니까 많은 어머니의 딸들이
이 책을 보면서 지하철이나 카페와 같은 공공장소에서
창피함보다 앞선 감동을 느껴 사람들 앞에서 눈물을 보이며
이 책을 읽었다고들 하여
이 책을 더 미루지 않고 읽어봐야겠다 결심하였다.
이 책은
주인공 시점을 이 책을 지금 읽고 있는 '나'로 지목하였다.
그렇다, 나에게도
이와 똑같지는 않지만 이와 비슷한 엄마가 있다.
나에게도 이와 같지는 않지만
나를 찌르는 엄마에 대한 미안함과 잘해야겠다는 책임감이 있다.
나는 올해 스물 여섯의 성인(?)이지만
여전히 어린 아이처럼 목을 놓아 울 때가 있다.
(오히려 최근에 어른스러워야 한다고 요구받지 않는, 청소년기 때보다 어린 아이처럼 울 일이 많은 것 같다.)
그럴 때면 언제나 내 입에서 울리는 소리는 '엄마'이다.
배게에 얼굴을 파묻고 울리는 소리, 엄마.
나 같은 딸들이 더러 있을 것 같다.
엄마를 부르며 누군가 내 머리를 쓰다듬어주길 바라는 마음을 표현하는 딸들이,
엄마를 부르면서 누가 나의 어리숙하고 부족함을 너그러이 안아주길 바라는 딸들이,
신경숙 작가님도 그런 딸인가.
작가는 자기 이야기를 책으로 쓴다.
작가는 자신을 벗어난 이야기를 쓸래야 쓸 수가 없다.
자신을 벗어나 쓰려고 발버둥 쳐봐도 결국에는 자기자신에게로 이야기가 돌아와 있을 것이다.
이 책을 읽으며,
나는 신경숙 작가의 어린 시절에 함께 가 보았다.
신경숙 작가의 고향집, 평상, 헛간, 그의 어머니, 그리고 그의 어머니의 거칠고 뜨거운 손을 보았다.
또한 나의 어머니와 나의 어머니가 낳은 딸, 곧 나를 보았다.
신경숙 작가가 자라온 세월만큼
내가 자라온 세월은 그리 혹독하지는 않았다.
세월이 변하여
나의 세월에는 몸이 배고프지도 춥지도 않았지만,
우리 엄마는
신경숙 작가의 엄마와 닮은 모습이 더러 있었다.
그녀는 엄마가 우리로 인하여 그 몸이 파먹혔다라고 표현하였다.
그 표현이 내 가슴에 와서 닿았다.
우리 엄마 몸이 나 때문에 파먹혔다.
그 흔적이 여전히 우리 엄마 몸에 분명하다.
엄마에게 내 못난 최선으로
잘하려고 한들,
분명 후회가 남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딸의 사랑이 크다한들
엄마의 사랑과 같아질 수는 없을 것이다.
하지만 엄마의 사랑에 비한다면
작고, 이기적이고, 유치한 나의 사랑을
그래도 엄마에게 표현하는 것이 나의 도리라는 생각이 든다.
신경숙, 이 여자의 글은 정말이지 너무도 따뜻하다.
글을 가슴으로 쓰는 것이 아닌가라는 생각이 들 만큼
따스하다.
씨앗을 애써 뿌리지 않아도
봄이 오면 앞 뜰에는 새싹이 고개를 들고, 이내 자신들의 갖가지 색을 자랑하는 꽃들을 피워 내고
뒷 뜰에는 알뜰살뜰 상추와 깻잎이 쑥쑥 자라나고
평상에는 자식들의 입으로 갈 감자, 고구마, 호박들이 다듬어지는
사계절 내내 따스한 햇볕이 지나가는
그런 집을
그리고
어느 누구도 그것이 당연한 것이 아니다, 특별한 것이다. 말해주지 않는
어머니의 거칠고 뜨거운 손을
작가가 내 마음에 그려주고 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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